건축평단 22 (2020 여름호) 기고

2020. 12. 17. 15:35기록

건축평단 편집주간인 이종건 교수님의 요청으로 여러 건축가들과 함께 집에 대한 작은 꼭지를 쓰게 (공통 질문에 답을 하게) 되었다. 


<질문1> 집 (단독주택)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그래서 꼭 구현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역설적으로 바깥 공간. 전이 공간, 사이 공간, 켜의 공간, 중첩된 공간, 경계의 공간. 뭐라고 불리든 ‘바깥’의 범주에 포함되는 공간. 마당, 중정, 안뜰, 대청마루, 데크, 발코니, 테라스, 베란다, 포치, 처마. 어떤 형식으로 실현되든 바깥인 공간. 그런 공간은 단순한 외부는 아니며, 건축가의 세심한 배려가 굳이 없더라도 필연적으로 내부와 연결되고 관계를 맺는다. 내부 공간은 기본적으로 쉘터(shelter)라고 생각한다. 바닥과 벽, 지붕으로 둘러싼 공간은 자연과 맹수, 적들로부터의 보호를 위해 인류가 처음 동굴로 들어가던 순간을 기원으로 한다. 이후 동굴이 움집이 되고, 모임과 제의, 권력을 위해 보다 큰 공간을 만들고, 기술이 동원되고 형식이 생겨나며 우리가 아는 건축의 역사가 되었겠지만 주택에 한하여 말하자면 내부 공간은 여전히 쉘터의 본질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거실의 벽난로가 그런 아련한 흔적들 중 하나다. 한편 바깥 공간은 내부 공간이 확장된 영역으로서의 공간이다. 어떤 구조적인 방식과 공간적인 형식을 띄든지, 지붕이 있건 없건, 담이나 벽으로 두르든 그렇지 않든, 집의 바깥은 거기까지가 나의 영역이 된다. 가사에 필요한 노동, 일요일 오후의 금쪽같은 휴식, 깊은 사색과 번득이는 찰나의 아이디어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공간. 개인적으로는 처마 아래의 공간을 좋아한다. 뜨거운 햇빛을 느끼면서도 피할 수 있고, 여름날 소나기를 온몸으로 느끼면서도 비에 젖지 않을 수 있는 처마 아래 공간. 나에겐 어린 시절과 맞닿아 있는 공간의 원형 같은 의미의 장소.

오늘날 집의 내부는 좀 편파적으로 말하자면 뭐가 됐든 결국은 인테리어다. 마감재가 덮고 있다. 바닥재를 무엇으로 할 것이냐, 미장이냐 석고냐, 석고 위 도장이냐 벽지냐. 정작 실시도면과 시공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바깥 공간은 부대토목이거나 별도공사에 포함되기 십상이다. 그런 부분을 처음부터 잘 챙겨보고 싶다. 확장형 발코니라는 변칙을 만들어 모든 공간을 면적의 문제로 환원시켜 버린 공동주택, 다가구주택은 건축가의 의지와 건축주의 결단 중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바깥 공간 제로인 집이 되어 버린다. 그런 집은 적어도 나에게는 집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들이다.

 

 

<질문2> 자신이 살 집을 설계한다면 무엇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을 것인가요?

집을 설계할 때 고려할 사항을 몇 가지 적어 둔 리스트가 있다. 최우선의 가치라면 그 초라한 리스트에서 하나씩 지우고 남은 한 가지가 될 것이다. 좁고 척박한 땅에 공사비는 대출을 받고, 내가 벽돌 미장이라도 해야 할 판에 비바람만 막고 살아보자 싶은 상황이라 치자. 나는 바깥 공간인 처마와 밝고 열린 주방(겸 식당 겸 거실이어도 좋다)과 어둡고 내밀한 방 하나를 취할 것이다. 밝음에서 어두움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하나의 벽과 문이어서는 안된다. 그 사이 공간에 이 집의 성패가 달려 있을 것이다.

 

 

<질문3> 어쩌면 코로나19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큰 변화에 직면해 있습니다. (단독, 집합) 주택에서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프랑스 건축가 로랑 보두앵(Laurent Beaudouin)이 오래 전 했던 말이 생각난다. “건축은 사람들을 모두 하나의 공간으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사람들을 단절시키는) 테크놀로지와는 명백해 상반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선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우리는 분리되어야 하고, 거리를 두어야 한다. 인터넷으로 인한 파편화와는 전혀 다른 맥락으로. 일견 공공건축은 그 용도와 의미를 상실한 듯 보인다. 프로야구는 관중 없이 중계만으로 개막을 했고 이런 방식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지구적 이슈가 되었다.

본질은 무엇일까.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전의 대유행과 어떻게 다른가. 학자들은 지구온난화와 분리되어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 징후들은 곧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한계점을 가리키고 있다. 불가피하게 건축도 지금까지의 패러다임에서 의미했던 성장을 멈추어야 한다. 신도시, 대규모 택지개발의 방식은 당장에라도 바뀌어야 하는데,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부동산 개발이 필요하다는 그 논리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지금 깨닫지 않으면 우리는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단독주택이나 소규모 건축물도 건물 하나에 대한 완결성이나 형태놀이보다는 함께 지속적으로 사용 가능한 재료에 대한 고민,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 도시와 마을에 대한 고민, 특히 도시화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함께 해야 하고 할 수 밖에 없는 시대가 되지 않을까. 생태,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이슈가 간판만 바꾼 낡은 산업주의의 이름으로 시장에 판을 치는 것과는 전혀 별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