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 할 수 있는 만큼

2026. 6. 19. 11:37

이 땅에서 건축을 하는 사람으로서 공동주택(아파트)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공동주택이 공동체의 주택이 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오랜 시간 공동체라는 공유된 의식이나 관계의 정서가, 혹은 공동체를 가능하게 했던 물리적이거나 사회적인 조건들이 서서히 와해되어 온 동시대의 역사에 대해서. 조세희는 침묵의 뿌리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알리바이라면 우리 시대의 시민 모두가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 땅 어느 곳의 역사가 20년밖에 안 된다는 것은 곧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남에게 전가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의 삶의 형식에 대해서도 그의 말처럼 우리 모두가 비껴나갈 수 없다.

21세기에 건축이 담론을 만들 수 있을까? 건축만의 문제가 아니라 건축 바깥의 조건으로 보아서도 그게 타당하기나 할까? 그런데 그런 질문은 내게 필요치 않다. 건축이 무엇과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한가하다. 왜냐하면 한 사회가 나아가거나 퇴보하는 것은 모든 것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얽혀있기 때문이다. 건축도 사회와 얽혀 있기에 건축만으로 무언가를 해낼 리 만무하고 반면 그럼에도 건축도 나름의 역할이 있는 것도 분명하다. 나의 출발점은 여기다. 건축이 할 수 있는 만큼 역할을 잘 하면 된다.

이것은 광장을 만들면 사람들이 모인다는 논리가 아니다. 공간이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겠지만 그럼으로써 사회가 곧바로 변화된다고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더 나은 사회와 공동체의 믿음을 가진 건축가의 설계와 그렇지 않은 건축가의 설계는 다르다고 믿는다. 공동체의 공간은 뽐내는 멋진 덩어리들, 돈으로 치장한 매혹적인 공간, 더 새롭고 더 현란한 컨셉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건축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품어 왔던 이 질문이 잘못되었다.

우리는 더 나은 환경과 삶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적어도 그런 세상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이 전제에는 별로 거부감이 없다. 그러기 위해 더 나은 스스로가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책을 읽고, 공부하고, 교류하고, 생각을 공유하고, 함께 나아가고...그런 우리들 중 누구는 건축을 하고, 어떤 이는 책을 쓰고, 다른 이는 옷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린다. 건축이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다. 더 나은 건축을 하기 위해 우리가 더 근사한 사람이 되어야 할 뿐이다. 더 넓게 바라보고 더 정확하게 책임지는 사람.

그런데 더 나은 세상을 왜 만들어야 할까. 우리는 어떻게 더 괜찮은 사람이 되는 걸까.

더 나은 무엇을 위해 애썼던 그들이 세상에 내어 놓은 그 생각과 결과물들을 통해서이다. 그러니 더 나은 건축이 모이다보면 느리지만 단단한 방식으로 결국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건축이 가진 딱 그 크기만큼. 건축이 또는 무엇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은 이런 방식을 통해서다. 때론 하나의 음악이, 하나의 시와 소설이, 영화와 건축이 세상을 바꾼 듯 보이는 현상과, 그렇게 우리가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방식의 이면도 이러한 느린 방식이 작동하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큰 물결 위의 작은 물방울이다. 어떤 물방울은 잠시 햇살에 반짝이고, 대부분의 물방울은 이름 없이 흘러간다. 그러나 물결은 결국 그 물방울들의 방향으로 만들어진다. 건축도 그렇다. 하나의 건축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한다. 그러나 어떤 믿음으로 지어진 건축들은, 천천히 우리가 사는 세상의 물리적 환경을 바꿔간다. 그리고 더 천천히 우리의 감각과 인식을 바꾼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